[아이디어가 돈] 기업은 여러 헌신자들에 의해 성장한다...세계 최대 컴퓨터 제국 IBM 사례
[아이디어가 돈] 기업은 여러 헌신자들에 의해 성장한다...세계 최대 컴퓨터 제국 IBM 사례
  • 최석진 기자
  • 승인 2019.12.08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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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가 돈이다 [워크타임스DB]
아이디어가 돈이다 [워크타임스DB]

대부분의 비즈니스 성공 신화에서는 아이디어를 지닌 한 사람이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IBM은 한 사람이 아닌 세 사람의 이야기이다. 허먼 홀러리스, 뛰어난 발명가였지만 완벽한 천재는 아니었던 그는 훗날 IBM을 통해 전 세계에 판매된 타뷸레이팅 머신(Tabulating Machine)을 구상하고 개발했다.

찰스 플린트, 개성이 강한 투자가이자 모험심이 강한 사업가였던 그는 홀러리스의 회사를 비롯한 여러 개의 회사를 사들여 IBM으로 만들었다.

마지막에 언급되지만 가장 중요한 토마스 왓슨 시니어, 판매와 리더십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플린트의 오합지졸 회사에 강하고 역동적인 문화를 도입했고, 그 문화는 오늘날까지 IBM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많은 사람이 IBM 하면 토마스 왓슨을 떠올린다.

실제로 1914년에서 1956년까지 그는 IBM의 대표적인 인물로 활동했고, IBM이라는 이름도 그가 지은 것이다. 그러나 왓슨은 기술자도 발명가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회사에서 생산되는 기계의 원리나 작동법도 잘 알지 못했다. 그저 고객에게 알려줘야 하는 수준의 정보만 숙지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IBM에 이르는 그의 여정은 상당히 흥미롭다. 하지만 IBM이 생기기 수십 년 전, 천재 발명가가 이룩한 업적부터 알아봐야만 IBM의 형성과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허먼 홀러리스 (Herman Hollerith)

1879년, 대학을 졸업한 뒤 그는 열아홉 살의 나이에 미국 인구조사국에 취직했다. 당시 인구조사는 10년마다 시행되었는데, 관련자들에게는 여간 피곤하고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홀러리스는 손으로 기록된 데이터를 정리하는 데 몇 년이 걸리는 걸 보고 더욱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는 기차에서 표를 검사하는 검표원이 목적지, 나이 등과 같은 정보를 기록하기 위해서 펀치로 구멍을 뚫는 것을 보았다. 그 때, 인구조사 데이터를 비슷한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갔고, 드디어 1884년 홀러리스는 첫 특허를 신청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발명품이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사업을 시작할 수 없었기에, 홀러리스는 인구조사국에 가서 과거 인구조사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자신이 발명한 기계를 사용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미국 정부는 그의 요청을 수락했고, 그 결과 정부로부터 일종의 인력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이 후 1890년 실시된 인구조사에서 홀러리스의 터뷸레이팅 머신을 사용한 인구조사국은 6주 만에 데이터 수집을 완료하고 모든 과정을 2년 6개월 만에 마무리하면서 세금 500만 달러를 절약하는 결과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홀러리스의 기계에 대한 수요는 미국을 넘어 유럽으로까지 확산되었으나, 발명가로서는 뛰어났을지 몰라도 좋은 사업가는 아니었던 홀러리스였기에 결국 찰스 플린트라는 투자자에게 사업을 매각하기로 결정한다.

토마스 왓슨 (Thomas Watson)

많은 사람이 IBM하면 떠올리는 사람, 토마스 왓슨은 홀러리스와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홀러리스는 사교성이 부족했지만, 토마스는 동기부여와 인사관리의 달인이었다.

또한 홀러리스는 가방끈이 길었지만, 왓슨은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채 나이가 차자마자 풀타임 일자리를 찾아다녔는데, 왓슨이 제대로 일을 시작한 것은 1896년 NCR(National Cash Register Company)에서 판매 수습생으로 일하며 당시 직속상관이었던 존 레인지에게 판매에 대한 모든 것을 배웠다.

그 때부터 그의 경력이 화려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NCR의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성과를 내면서 NCR의 세일즈 매니저로 승진하고 또 왓슨의 활약에 힘입어 1910년 NCR의 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홀러리스의 타뷸레이팅 머신에 대해 알게 된다. 하지만 왓슨을 포함한 NCR의 경영진은 부패 및 독점행위 혐의로 연방정부에 의해 기소되고 결국 피고인들과 합의를 하면서 범죄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기소되었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면서 NCR을 떠나 왓슨은 찰스 플린트의 사무실에 입사하게 된다.

찰스 플린트 (Charles Flint)

찰스 플린트는 IBM 역사상 가장 다채로운 인물로 꼽힌다. 그는 모험가, 탐험가, 투자자, 무기 거래상으로 활동했으며 미국 대통령에서 독재자에 이르기까지 고위층과 친분이 두터웠을 뿐 아니라, 타뷸레이팅 머신 컴퍼니를 비롯해 여러 사업을 이미 인수해 CTR(Computing Tabulating Recording Company)의 사장이었다.

토마스 왓슨은 CTR에서 근무하기 시작했으나, 여러 회사가 인수된 상태이다 보니 서로 어울리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기업 문화도 엉망이었다. 이 와중에 왓슨은 맨 프로포지션(The Man Proposition)을 도입해 모든 직원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또한 외부에서 브레인을 영입하기 보다는 기존 직원 내 인재 발굴에 힘썼고, 이러한 왓슨의 스타일와 도덕성은 회사 내 다른 간부들과 직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왓슨은 경쟁이 성과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직원들 간의 경쟁을 통해 최고의 결과를 얻어내는 데 탁월한 인물이었다.

이후 1924년 CTR은 IBM으로 회사명을 변경하고, 1930년대 대공황으로 기업 대부분이 고군분투하던 시절에도 IBM은 타자기를 비롯한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고, 1940년대 처음으로 컴퓨터 제작을 시도해 10년 뒤에 첫 컴퓨터를 선보였다. 최근 IBM은 소프트웨어 쪽으로 눈을 돌렸고 현재는 인터넷 보안, 데이터, 저장을 포함한 IT 서비스에서 강세를 보이며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설립한 지 100년이 되어가는 오늘날, IBM은 그 동안 수많은 경기침체에도 흔들리지 않고 170개 이상의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컴퓨터 시스템 업계에서는 단연 세계 1인자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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