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힙지로' '청년창업 산실'... 세운상가 상인들의 반응은 '미지근'
[기자수첩] '힙지로' '청년창업 산실'... 세운상가 상인들의 반응은 '미지근'
  • 최종원 기자
  • 승인 2019.11.23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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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3가역 풍경. 근처에는 을지로 명물로 알려진 '노가리 골목'이 있다. [최종원 기자]
을지로3가역 풍경. 근처에는 을지로 명물로 알려진 '노가리 골목'이 있다. [최종원 기자]

"이번 역은 을지로3가, 을지로3가역입니다"

서울 지하철 을지로3가역 3번출구에서 나오면 시끌벅적한 소리가 귓주변을 맴돈다. 소리를 따라 찾아간 골목길에는 수백 개의 간이 테이블이 쭉 펼쳐져 있었다. 대다수의 테이블엔 노가리와 맥주가 놓여져 있었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2030세대의 젊은 청년이었다.

을지로는 최근 젊음의 활기를 몸소 느낄 수 있는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원래 을지로 상권은 각종 노포들이 즐비해 있어 중장년층이 주로 찾는 다소 제한적인 상권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을지로는 ‘힙지로’라고 불리며 20·30대 젊은 수요층이 상권에 대거 유입되고 있다. '힙지로'는 신선하다는 의미의 'hip'과 을지로가 결합된 단어이다.

실제로 을지로3가의 일평균 유동인구는 6만2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월평균으로는 186만 1680명의 인구가 상권을 찾는 것으로 조사됐다. 매출도 껑충 뛰어올랐다. 상가정보연구소가 을지로 상권 내 주점의 매출을 집계한 결과, 올 9월 기준 점포당 평균 5767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을지로 3가 상권이 속한 서울 중구 주점 평균 매출 1897만원 대비 3870만원 높은 매출이다.

▷ 세운상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에 신음하다

서울시는 세운상가를 살리는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다시 세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최종원 기자]
서울시는 세운상가를 살리는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다시 세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최종원 기자]

을지로는 동시에 산업화 시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세운상가'를 가지고 있다. 개발과 보존을 둘러싼 첨예한 논쟁, 그 간극에는 여전히 세운상가가 입방아에 오른다. 젠트리피케이션(낙후된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원래의 거주민들이 쫓겨나는 현상)으로 대변되는 개발 문제 때문이다. 세운상가는 도심 속 흉물로 방치됐다.

2006년, 서울시는 세운상가 일대를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해 전체 상가를 철거한 후 녹지축을 조성하고 주변 일대를 고밀도로 개발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현대상가 1개 동이 철거되기도 했다. 하지만 기존 건물주와 토지 사업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와 2008년 금융 위기의 여파로 사업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이에 따라 전면 철거 계획에 보류 결정이 내려지며 세운상가의 앞날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갯속과 같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시는 세운상가가 가진 잠재력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2014년 6월 서울시는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통해 버려진 이곳을 구제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2015년부터 지금까지 세운상가군에서는 재정비촉진지구의 분리 개발 방식을 골자로 한 도시 재생 사업이 추진 중이다.

서울시는 세운상가부터 진양상가에 이르는 총 7개의 상가군과 그 일대의 도심 제조 산업을 포용하기 위한 ‘다시·세운 프로젝트’의 목표로 보행재생·산업재생·공동체재생까지 세 가지를 설정했다.

▷ 서울시, '다시·세운 프로젝트'로 청년창업 산실 도전?

서울시는 세운상가 심폐소생술을 위해 청년창업 공간을 만들었다. 먼저 서울시와 서울시립대학교는 세운상가를 생산의 주체로 키우고자 지하에 '세운캠퍼스'를 유치시켰다.  

기존 입주사들 관리 외에도 서울시는 상가 한켠에 '세운 메이커스 큐브' 공간을 마련했다. 상가 2층과 3층에 마련된 이 공간은 현재 17개의 팀이 입주해 창업 프로젝트를 수행 중인 '창업큐브'이다.

'세운 메이커스 큐브' 입주 대상은 세운상가와 그 주변의 인프라를 활용해 제조업에 해당하는 활동을 기획 하거나 실행 중인 단체나 기업이다. 선정 결과 초청형 7곳, 공모형 10곳이 입주 기업 또는 단체로 선정됐다.

이 밖에 서울시는 조성 공간에 창업 인큐베이팅, 메이커 교육, 공동 제작소, 부품 도서관, 전자 박물관을 설치해 입주자의 편의를 도모하고 시민들에겐 세운상가의 역할을 널리 알리고 있다.

▷ 기존 상인과의 상생은 '미해결' 난제

세운상가 안에 굳게 닫혀있는 점포. 대다수의 점포들이 문을 닫아 을씨년스럽다. [최종원 기자]
세운상가 안에 굳게 닫혀있는 점포. 대다수의 점포들이 문을 닫아 을씨년스럽다. [최종원 기자]

과거 '로켓도 만든다'는 최첨단 기술의 집약처 '세운상가'는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오락기와 식사와 음료를 곁들일 수 있는 고급 싸롱까지 모두 갖추며 '데이트 코스'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을지로를 통해 유입된 인구가 세운상가 상인들의 수익과 연결되지는 않는다. 세운상가의 산업군은 B2C보다 B2B의 특성이 강하며 전문가들 간 거래래로 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자가 만난 세운상가의 상인들은 '매출이 올랐는가'에 대한 질문에 "호랑이카페, 삼겹살 집만 잘되고 우리는 똑같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존 상인들은 세운상가의 청년창업 기조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대성전자의 변원구 사장은 "세운상가에도 많은 청년 스타트업들이 입주하고 있지만 오래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서울시에서 (청년들에게) 창업자금을 대출해주지만 2년 이상 스타트업을 유지하면 변제도 가능한 희한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제이알씨로봇의 김정수 사장은 "서울시에서 (우리에게) 파워포인트(PPT)로 사업 설명을 하라는 경우가 있는데 늙은 엔지니어들이 어떻게 파워포인트를 만들겠나"고 자책했다. 

취재가 끝나고 세운상가 옥상 전망대에 올라갔다. 골목골목 이어진 청계천과 종로 주변, 저 멀리 N타워까지 뚜렷이 보였다. 기존 상인들과의 개발 관련 문제도 뚜렷이 풀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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